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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3-25 13:5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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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유 천지에 한국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 기시다 수상과 정상회담에서 한일양국과 세계의 미래를 논의한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박진 외교부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신을사조약에 버금가는 대일굴욕외교”에 대한 국정조사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국회 통일외교회의에서 한일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여야간 공방전이 벌어졌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도 “정상회담내용을 국민에게 소상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정권(문재인정권) 때 저질러 놓은 일을 수습하는 차원이다. 민주당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수상과 정상회담에 대한 여야 공방전은 국민과 세계 여론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한일정상이 미래를 논의한 회담에 대해 민주당의 과도한 비난과 규탄이 너무나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는 일제강점기의 노동자 강제동원문제 등으로 과거의 앙금이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일간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야당이 비난하는 것은 세계 외교사에서 보기 드문 사건이다.


[3번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과 화해, 불가능했던 독불정상회담]


원래 세계 차원에서 정상회담은 양국이나 각 지역 또는 세계 차원에서 미래를 보다 안정과 행복, 평화 유지 등을 위해 각기 자기나라의 입장을 설파하고 의견을 종합 합의하는 데 목적을 두기 마련이다. 예컨대, 독일은 19세기 보불전쟁, 20세기에 1,2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를 엄청나게 괴롭힌 독일과의 정상회담. 아데나워-드골의 첫 정상회담도 독불과 유럽통합의 의제로 시종했었다.


1958년 드골 대통령의 초청으로 프랑스 시골 엘리제 드제그리즈 마을의 드골 사저를 찾아 2세기에 걸친 독일발 3차 대전혈투(大戰血鬪) 후, 첫 번 드골-아데나워 정상회담은 미래의 문제로 일관하여 세계의 박수를 받았다. 드골은 초기 패전한 19세기 침공과 20세기 1,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전쟁에서 승리로 결말지었고, 프랑스는 20세기 후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미영불소 세계의 4대강국중 하나로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제4공화국에서 싸움에 영일이 없던 정치판을 평정해 1957년 프랑스 제5공화국을 창설해 세계의 지도국으로 우뚝 세운 주인공도 드골 장군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국제 사회지도국으로 우뚝 선 것은 1958년 프랑스 ‘엘리제 드제그리즈’라는 프랑스 시골의 드골자택에서 19-20세기의 양국 전쟁혈투를 마감하고 미래를 위한 드골-아데나워의 독불양국과 유럽통합을 위한 미래합의가 만들어낸 성과였다. 1958년 9월 14일 아데나워는 82세의 고령이었고, 서독을 전후 10여년간 성공적으로 경영통치한 결과, 2차대전 패전국인 독일을 “라인강의 기적”으로 신생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만들었다.


아데나워는 전쟁 중 피해가 너무나 큰 상처투성이 프랑스 시골길을 달려 드골의 자택을 찾느라 상당히 헤맸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으로 돌아온, 2차대전 전승국 드골 장군의 초청을 받아 정상회담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드골은 2차대전 승전국으로 프랑스를 국제무대에 올려 세운 드골장군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잘 알며, 특히 그는 드골의 반독일정책도 이해하고 있었다.


[형제국 같은 독불우호, 드골-아데나워 정상 단칼에 이루었다]


자택에서 ‘과거의 숙적 독일총리 아데나워를 기다리던 드골은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지 않자 초조한 기색으로 표정이 굳어 있었다고 한다. 아데나워의 서독총리 승용차는 프랑스의 시골 길을 헤매다가 정시를 놓치고 뒤늦게 드골 자택에 도착했다.


드골은 차에서 내리는 서독수상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 악수를 먼저 청하고 독일어 인사를 했다. 68세의 드골이 일생 전쟁의 적수였던 독일 수상을 예를 갖추어 집안으로 인도하느라 서두르다가 아데나워가 자칫 넘어질 뻔 했다고 드골회고록에 기록했다.


독불정상 회담일은 일요일이었다. 천주교 신도인 두 정상은 시골마을 코롱베이의 드골과 서독 대도시 쾰른의 아데나워 모두가 라인강변 출신으로 역사와 전통 문화를 공유하는 환경에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상호 공유하는 분위기로 잘 이어졌고, 두 정상과 양국 국민의 화해와 교류 및 유럽통합과 평화의 대로를 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독불의 화해와 동맹, 우호는 21세기 오늘도 다져지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후 파리의 엘리제 대통령궁의 독불화해조약은 21세기에도 동맹과 우호는 물론 독불은 ‘형제국의 쌍둥이’처럼 국제사회의 지도국으로 우뚝 서있는 것이다. “과거를 묻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합류해 달라” 이것은 프랑스 국민의 요청이며 드골의 의중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독불의 형제국 같은 두 이웃나라는 21세기 세계에 오늘도 우뚝 서있는 것이다.


오늘 아무도 양차대전중 독일의 히틀러 등 전제주의 독재자들이 자유민주주의 나라 프랑스를 얼마나 가혹하게 고문하며 다루었는지를 드골은 묻지 않았다. 그리고 독일은 2차대전 후 열심히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여 선진국의 핵심인 G7의 주류 국가로 되었던 것이다.


[독불화해 11년 후, 한일정상회담, 미래우호협력 다졌지만...]


일본과 한국은 19세기 제국주의 약육강식 시대의 해법을 답습하고 있지 않은가 의심이 든다. 특히 우리가 19세기 윤석열-기시다 정상회담에 대해 ‘죽창가’를 부르며 민족 감정을 앞세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비판에 앞장서며 한일정상회담을 ‘굴욕외교’등으로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일관계에서 오랜만에 우호의 물꼬를 튼 것은 윤석열-기시다 정상회담의 결과로 보인다.


윤대통령은 일본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해법을 발표하고 구상권은 없다고 언명했다. 일본 외교가는 “윤대통령의 결정”을 ‘용단’등으로 호평했다.


그런데 국내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전국지표조사(NBS)는 ‘일본정부와 기업들의 참여와 사과가 없는 해법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0%에 달했다.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33%였다. 우리 외교가의 분위기도 유보적이다. 일본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판도를 장악하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외교 전략을 위해 일본의 위상을 높일 외교 전략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한일정상회담을 ‘미래를 위한 새로운 역사적 창’이라고 설명했다. 윤대통령이 새로운 공식으로 한일관계를 풀어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이 일본의 진정성있는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가 혼자서 미래로 갈 수는 지난(至難)할 일일 것이다. 피해자들이 계속 일본의 전향적 사과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년간 단절된 한일관계가 해소되어 대화와 이웃 외교가 시작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일본은 유엔에서 지난 1월에도 “강점기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한국 노동자들이 자발적 참여를 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가 한국의 불신에 불씨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화로 풀 수 있는 외교적 과제다.


일단 ‘서틀외교’가 회복한 만큼 한일관계는 미래와 함께 과거사도 풀어내야 하는 외교적 노력은 긴요하다. 한일관계는 역사적 ‘아킬레스건’과 같은 가까운 이웃의 난제(難題)였다. 일단 한일관계가 수년간 단절되었다가 셔틀외교가 열릴 만큼 ‘멀고도 가까운 이웃 일본과의 우호협력이 활성화될 것을 기대해도 될 것인가.


[민주당, “외교장관에게 탄핵사유” 으름장, 극좌정당의 모습]


앞에서 독불관계가 오늘날의 형제국처럼 이웃사촌간의 우호관계를 잘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일관계의 매듭이 늦었지만 이제 풀린 것은 외교적 성과로 평가해도 좋은 것인가, 의구심이 드는 더불어민주당의 과거사 비방이 미래를 해칠까 우려되는 이유다. 민주당은 “일본기업에 대한 구상권을 포기한 것은...대통령이 주권자의 이익을 저버리는 배임행위다. 대통령과 장관에게 명한 탄핵 사유가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또 “신을사조약에 해당하는 대일 굴욕외교에 대한 국정조사를 열 것이다”고 혹평했다. 박진 외교부장관은 “탄핵을 말하는데 심각한 인신공격이고 명예훼손이다. 정부정책은 탄핵사유가 아니다”고 응수했다. 국제사회에 보기 흉한 대일외교 폄하와 비난이 도를 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주섭일, 419공로자회 고문, Why times 고문, 전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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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학 박사
    전 중앙일보 파리특파원-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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