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2-12-20 07:43:51
기사수정



비단 나만은 아녔으리라. 6·25세대인 내 어린 날엔 뭐가 그리도 갖고 싶은 게 많았던지. 그 중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장 갖고 싶었던 게 손목시계였다. 당시 시계는 어떤 종류가 되었건 귀한 물건이었지만 몇 몇 친구가 차고 다니던 시계는 어찌나 갖고 싶었던지 한 번만 차보자고 해도 뻐기기만 할 뿐 약만 올리는 녀석이 얄밉기만 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 작은 형(사촌)이 가만히 나를 불렀다. 그리고 무언가를 내밀었다. 시계였다


처음으로 차보는 내 시계였다. 그땐 태엽을 감아줘야 째깍째깍 가는 시계였다. 그날은 잠도 자지 못했다. 조금 태엽이 풀리면 다시 감고 또 조금 풀릴 만하면 다시 감기를 수없이 하며 그렇게 밤을 설쳤다. 난 백부님 댁에서 사촌동생과 함께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그 동생이 어떻게 시계를 사서 차고 있는 것을 보자 내 마음이 서운했을 것으로 생각하여 작은 형이 내게도 시계를 사 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시계를 너무 애지중지 하다가 어디서인지도 모르게 잃어버렸다. 잃어버렸단 말도 못하고 오랫동안 작은 형의 눈길을 피해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그 해 겨울 이모님 댁엘 갔는데 이모부가 추석날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모는 유복녀로 태어난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도 없어 내가 갔을 땐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병원으로 가는 중에 내 품에서 숨을 거두었고 내가 동네 어르신 몇 분과 함께 뒷산에 묻었다. 떠나오는 날 조금 정신을 차린 이모가 무언가를 찾는가 싶더니 이모부가 차던 건데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네가 차다가 아이들이 크면 주라며 이모부의 유품인 시계를 내게 주었다. 그 시계는 흔들면 태엽이 감기는 시계였다


사고 당시 충격으로 유리판에 약간의 흠이 생겼지만 좀 크고 무겁기도 할 뿐 아니라 내가 차기엔 고가의 좋은 시계였다. 난 이모부를 생각하며 그 시계를 차고 다녔다. 그런데 얼마 후 편지가 왔다. 여름방학 때 시계를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댁에서 온갖 못 할 말을 다 하는 중에 친정으로 이것저것 다 빼돌리고 시계까지도 이종 조카한테 주었다며 공박을 해 오는 바람에 견디다 못한 이모가 큰 동서네 줘버리겠다고 가져오라 했단다.


첫 번째 시계는 작은 형의 사랑 선물이었다. 내 시계는 아니지만 잠시 차고 다녔던 이모부의 시계는 더욱 이모부를 그리워하게 한 시계였다. 그리고 내가 산 첫 번째 시계는 배터리를 넣어주는 전자시계였다. 용돈을 모아 어렵게 산 첫 번째 시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 중에 무심코 시계를 들여다보았는데 모든 숫자가 같은 숫자이지 않는가. 순간 가슴이 이유도 모르게 벌떡 벌떡 뛰었다. 1111111111, 순간 그것은 어떤 좋은 일의 계시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연은 우연인데 우연이 아니라 내게로 다가온 엄청난 행운의 징조처럼 생각되었다.


사실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행운과는 담을 쌓은 듯 했다. 6·25라는 전시에 태어난 것도 그렇고 돌 달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세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 형도 하나 있었다는데 그마저도 내가 태어나기 전 홍역으로 세상을 떴단다. 그런 내가 외할머니와 이모의 돌봄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평생 외톨이로 남의 도움 속에 살아왔음이니 어찌 작은 행운이라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머피의 법칙이 내 삶의 방정식일 수 있었고 그런 나여서인지 초등학교 6년간 열 두 번의 소풍에서도 그 흔한 보물찾기 종이쪽지 하나 찾지 못했던 나 아녔겠는가. . 있다. 4학년인가, 5학년 때 하나 찾긴 찾았는데 담임선생님의 신발을 입으로 물고 오면 상품을 준다고 했었다. 그날따라 선생님은 크고 무거운 워커를 신고 오셨고 난 그 워커를 벗겨 물고 가서 노트 한 권을 받았었다. 결코 행운이랄 수 없는 보물이었다.


그런 나였으니 애당초 행운 같은 것은 어떤 경우에도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히 시계를 보았는데 모든 숫자가 같은 숫자였다. 생각하니 그달 그날과도 일치했다. 놀라웠다. 이런 우연의 일치가 어찌 쉬운 일이랴. 이건 결코 우연일 수 없고 행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2222222초와도 만났다. 무언가 좋은 일이 꼭 일어나 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은근히 그런 일치의 순간을 기대하며 즐기곤 했다. 다음에 그런 숫자가 일치할 수 있는 때가 언제인가 계산해 보고 그 날을 기다리며 또 그런 일치의 순간을 맞을 수 있는지를 시험했다. 그러나 내게는 그로 인한 어떤 행운도 찾아와 주진 않았다. 하지만 어떻든 내가 마련한 그 첫 시계를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애지중지 차고 다녔다. 그러고 보니 내게 이 세 개의 시계는 하나같이 첫 시계의 의미를 지니며 내 안에 기억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 편 생각하면 내게 일어나고 내게 와 주었던 모든 것들이 다 기적같은 행운이 아녔을까도 싶다. 무엇 하나 그냥 되는 게 있는가. 헌데 그 많은 세월동안 내가 살았고 살아왔고 또 이만큼에서 돌아보고 내다보는 삶으로 별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으니 기적 중의 기적 아닌가.


외유(外遊)를 많이 하셨던 외할아버지께서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남자는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시계를 차야하고 반지도 좋은 것을 끼어야 한다고 하셨다. 사람이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 값나가고 좋은 것이면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다는 경험적 말씀이셨다


요즘이야 많이 달라진 세상에서 할아버지 말씀을 이해할 만한 사람도 많지 않겠지만 가끔씩 외할아버지 말씀이 생각나 실천에 옮길까 생각을 해보다가도 워낙 몸에 걸리적대는 것이 있는 것을 싫어하는 나이다보니 그도 못해보고 만다. 그러고 보니 내가 시계 선물을 한 것은 기억이 없는데 좋은 시계는 아니라도 시계를 선물로 받은 것은 여러 번인 것 같다


얼마 주지 않아도 이쁘고 정확한 패션시계도 많은 요즈음 시계 생각을 하다 보니 새록새록 그리운 사람들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내 어린 날 아버지의 존재감도 모르던 내게 무한한 든든함으로 내 앞에 서 계시던 이모부가 유난히 그리움으로 떠오른다. 그때 차고 다니던 이모부의 시계와 함께.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whytimes.kr/news/view.php?idx=1374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