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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1-10 06:49:21
  • 수정 2022-11-10 0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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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


산업과 문명의 측면에서 동양이 서양에 앞서고 있다라고 하는 말은 어느 넋 빠진 정신병자의 헛소리일까? 그런데 실제로 우리 인류 역사에서 그런 적이 있었다면 믿겠는가? 미래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서양문화와 동양문화는 800년을 주기로 성쇠를 반복하는 데, 3세기부터 13세기까지는 동양의 과학기술이 서양인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경제발전 역시 동양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이런 주장에 대해 서구인들조차 아직도 19세기적 생각에 압도되어 300~400년 전만해도 유럽보다 동양이 더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 후 15세기까지 중국문명이 서양문명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는 증거는 여러 자료에서 입증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용활차, 연자방아 및 이에 대한 수력의 이용, 수력식 야금용 풀무, 송풍기와 풍구, 피스톤식 풀무, 직조기와 베틀, 손수레, 수레를 끄는 마구, 요지경, 굴착기술, 아치형 다리, 쇠사슬식 다리, 운하용 수문, 돛과 항해용 장치, 화약, 나침반, 종이, 목판인쇄, 활판인쇄, 도자기 등 많은 것에서 동양이 서양에 앞섰다. 이런 기술이나 발명품들은 1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기간을 걸쳐 유럽으로 전수되었다.


중국은 1420년대에 세계 최첨단 해양 선단을 이끌고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어쩌면 아메리카 신대륙도 동양이 세계 최초로 탐험했을 개연성을 부인할 수 없다. 이보다 70년이나 늦은 1492년에 출항한 콜럼버스와 마젤란은 이미 중국의 제독 정화(鄭和)가 만든 지도를 참고로 미대륙을 탐험했다는 주장도 있다.


142133일에 낙성식을 거행한 북경의 자금성(紫禁城)은 명나라 영락제가 거주하기 시작하여 1924년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퇴출될 때까지 500년 동안 명청(明清) 두 왕조 24명의 황제가 중국을 통치하던 곳이다.


높이 11m의 성벽과 너비 52m, 깊이 6m의 호성하(護城河)로 둘러싸인 동서 760m, 남북 960m, 면적 720,000 평방미터, 건물 980, 방이 모두 8,707칸으로 구성된 현존하는 궁궐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황제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다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자금성(紫禁城)이라 불렀다.


14년 동안 10만 명이 넘는 장인과 백만 명 이상의 노동력이 투입되었다. 여기에 소요된 자재는 운남성 밀림에서 북경까지 운하로 운반했고, 석재는 운하가 어는 겨울에 빙판을 이용하여 운반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운하를 끼고 흐르는 곳에 위치한 소주대학(蘇州大学)에서 3년간 근무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강가에 앉아 그 때의 역사를 그려보기도 했다.


1421년 내시 출신의 정화(鄭和) 제독이 이끄는 7차 해양 탐사대의 규모는 세계 최고의 함대였다. 배수량이 300톤이 넘는 107척의 선단으로 총 인원 27,000명을 승선시켜 세계를 탐험했다. 이보다 70년이나 뒤진 1492년에 250톤 정도의 배 3척에 겨우 120명이 승선하여 미국이라는 신대륙을 탐험한 산타마리아호는 정화(鄭和) 함대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초라했다.


자금성 낙성식에 참석한 해외 귀빈들에게는 청자로 만든 도자기 그릇에 산해진미를 가득 올려놓은 진수성찬이 제공되었는데, 이듬해인 1422년 영국 헨리 6세의 왕위 즉위식에 참석한 귀족들에게 제공한 잔치 음식은 겨우 바나나 잎으로 만든 그릇에 정어리 구이와 과일 그리고 몇 가지 반찬이 고작이었다. 당시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은 동양의 도자기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고, 아름다운 도자기 찻잔으로 차를 마시는 것이 최대의 꿈이었고, 왕실과 귀족사회에서는 신분 과시용으로 도자기를 소장하기도 했다.


동양과 서양의 군 병력 수를 비교해 보아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중국의 병력이 압도적이다. 명나라 건국 초기의 인구는 6천만 명으로, 병력은 180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14세기 초 백년 전쟁이 시작되던 때 영국은 총 인구 375만 명에 총 병력 5만 정도였고, 프랑스는 총 인구 1,600만 명에 병력 10만 정도에 불과했다.


11세기만 해도 유럽 전 지역을 합쳐도 더 높은 생산근로자 인구를 가지고 있었던 중국은 유럽보다 앞선 항해술과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인도양 원정을 다녔다. 생산력과 수공업 그리고 교역의 발달로 13세기 중국에서는 이미 민간이 경영하는 교역이 꽃을 피웠고, 이에 따라 이익분배, 원정에 따른 리스크 관리, 원격지 거래에 대한 표준, 승무원 관리 등이 서양보다 먼저 발전하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사의 대가인 폴 베이로츠 (1930~1999)에 따르면 1750년에도 전 세계의 총생산(GNP)1,550억 달러(19600기준)였고, 그 중 70%1,200억 달러가 아시아의 몫이었다고 한다. 1860년도에도 전 세계 총생산 2,800억 달러의 거의 60%1,650억 달러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가 차지했다고 한다. 1800년도의 1인당 총 생산(GNP)은 중국이 228달러, 영국과 프랑스가 150~200달러 수준이었다고 하니 1400~1800년대의 세계 경제는 여전히 아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러나 막대한 정부의 소모성 재정지출의 부담과, “모든 사물이 다 제 자리에 있도록 하는 것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유학사상으로 무장된 정부 관료들에 의해 더 이상의 세계 탐험은 중지되었다. 그런 결과 1433년 이후 더 이상 인도양에 원정 함대를 파견하지 않았고, 급기야 1436년에는 외양선 건조를 금지하는 칙령까지 내리게 되었다.


중국판 대 항해 시대의 몰락과 서유럽판 대 항해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런 후 동양은 고요의 시대를 걸으며 동양 특유의 정문화(静文化)를 이어가게 된다. 결국 1793년 북경 주재 영국 대사 메카트니(George Macartney) 경이 청나라 건륭 황제의 여름 별장을 방문하면서 중국의 번영은 끝나고, 1800년을 기점으로 문명의 추는 완전히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후 동양은 철저하게 서양에 의한 동양화의 길을 걷게 되고, 르네상스 이후 서구는 비서구를 오리엔트라 부르며 야만의 땅, 비문명의 땅, 신비의 땅으로 규정함으로써 서구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해 나갔다. 현재도 서구는 우월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비우월적 동양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틀로 가두어 놓고 있다. 이번 “Covid-19” 상황에서도 바이러스가 인종을 구별하지 않는 데도 동양인들에게 대하는 우월적 선입견이 여전함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미래학자 토인비는 21세기부터는 다시 동양의 문명이 활기를 되찾아 28세기까지 전성기를 이룰 것으로 예측했다. 철학자 러셀도 21세기는 다시 동양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고, 전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 의장이었던 멕크레이컨도 2,000년대가 되면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 등의 태평양 공동체의 경제력이 유럽과 미국의 규모를 초월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경제 전문가 조지(George)1,275년을 기준으로 볼 때, 동양의 지수를 200으로 본다면 서양의 지수는 거의 0에 가까웠다고 평가하면서, 이 같은 동양문명의 우위는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다시 한 번 꽃을 피울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토인비의 동서양 문화 흥망 주기 800년 가설이나 서양의 여러 정치경제 전문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분명 동양의 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고 한다. 동양의 황하 문명과 서양의 그리스 문명은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하면서 그 세력이 인접 지역으로 확대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중국의 문명은 외부로 확산되지 못하고 그 자체로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그리스 문명은 맹렬하게 확산의 길을 걸었다. 그리스에서 시작한 서양문화는 터키와 로마, 그리고 남유럽 지역 스페인으로 확산이동 하였다.


그리고 다시 영국을 위시한 유럽 본토로 이동하고, 그 세력은 다시 미 대륙으로 건너갔다. 지금은 미국의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그 문명의 세력이 환태평양 시대를 거쳐 아시아의 용이라고 지칭하는 한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정복했던 그리스와 로마는 이미 해가 져서 과거의 화려했던 역사적 유물과 유적을 이용한 관광산업과 패션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유럽 국가는 향신료, 커피, 설탕과 같은 식품산업으로 부를 축적했던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지는 노을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철강 산업을 활용한 자동차, 기차, 비행기, 선박과 같은 수송 수단의 첨단화 산업으로 부강했던 미국도 이제 그 강력한 세력의 정점을 지나 해가 기우는 오후를 맞고 있다.


이제 찬란하게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기지개를 펴며 용트림하는 동아시아 문명이 바통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현대화 된 철강 산업을 등에 업고 대형 선박 건조기술로 세계를 휩쓸고, 가전제품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IT산업과 미래 AI산업이 주력 제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스 문명에서 출발하여 유럽을 거쳐 미국을 돌아 다시 아시아로 한 바퀴를 돌아 제 자리로 돌아오는 진정한 세계문명 1주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아시아, 특히 동북아 한중일 삼국의 세계 경제 정상탈환이 눈앞에 다가 왔다.


전 세계의 몇몇 언론들은 급한 면은 있지만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아시아 문명의 전환 기점으로 논평하기도 한다. 이미 2019년 평창 올림픽이 있었고, 2020년 도쿄 올림픽(1년 연기), 2022년에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2032년에는 다시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20년 전에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TCS)이 설립되어, 2020~2030년까지 향후 10년간의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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