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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1-01 06: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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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않은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삶의 중심을 잃은지도 3년이다. 한 고비 넘겼다는 나라도 있지만 휴화산처럼 불안해 보이는 나라들도 여전히 있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고비를 넘긴 것 같기도 하고 비교적 안정세로 돌아가고 있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릴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안타까웠다. 한 나라에서만도 하루 1천명의 목숨이 날아가는 뉴스를 접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어디일까를 다시 생각해보았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맞이하고 보냈던 우리의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 계기도 되었다. 물론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죽는다. 그러나 그 죽음조차도 현재의 나와는 아주 먼 거리에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내 불행이 아니라면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로 생각했다. 한데 뉴스를 점령하고 있던 가장 큰 사건은 속수무책으로 퍼져가는 바이러스의 감염이었고 그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 어떤 전쟁에서도 이렇게 사람이 무참히 죽어가진 않았다.


세계 최고의 부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휴지를 사재기하고 당장 먹을 것이 없게 만드는 참담함과 황당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는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항공모함조차도 바이러스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잖은가. 사람에게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이 죽음이지만 그 죽음조차도 막거나 연장하겠다는 과학과 의학이 최고의 경지에 와 있다고 거만을 떨어왔다. 병든 부위를 교체하고 암세포는 죽이면서 과학만능 의학만능을 서로 자랑했다. 머잖아 모든 질병을 다 정복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한데 바이러스 앞에서 인류는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임을 만천하에 시인하고 말았다.


사람을 비롯한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겐 너나없이 분명한 것이 있다. 누구나 모두 죽는다는 것이요, 누구나 혼자서 죽는다는 것이요, 누구나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 더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만은 정복될 수 없는 영역으로 항시 대비해야 하는 것이 생명 있는 것들 특히 사람에겐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 진실이다.


산다는 것은 여행과 같다고들 한다. 하지만 여행이 여행다울 수 있고 특히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려면 전제조건이 있다고들 말한다. 좋은 여행을 하려면 우선 짐을 가볍게 하라고 한다. 좋은 동행자와 가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필히 다시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사는 것이 여행이 되려면 너무 가지려 욕심내지도 말고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주되 돌아갈 집처럼 언젠가는 나도 분명히 죽음 저편의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는 격리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반환했었고 값없이 누리던 일상의 삶은 크게 제한을 받았다. 그러면서 원하건 원하지 않건 비로소 우리가 일상으로 누리던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답고 귀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산다는 것은, 누린다는 것은 그냥 축복이나 선물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기적이었다. 삶도 단순히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받는 선물이었다. 잘 받아 잘 써야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게만 내려진 특별한 은총이요 기적의 축복이었다. 그런 만큼 이런 삶을 더더욱 소중히 아름답게 유지하고 가꿔가고 누려가야 할 사명과 책임까지 느낀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그런 행복을 값도 없이 받아 누리고 있었음을 어떻게 얼마나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해야 할까. 산다는 것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잘 가고 있다는 것은 거대한 어떤 힘이 분명 나를 아름답게 인도하고 허락하는 기적의 축복임이 분명한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산다는 것은 못 가본 곳을 가보는 것이 아니라 안 가본 곳을 미지의 힘 안내를 받아 가는 기적 같은 축복의 길이다. 그 길에서 만나고 사랑하고 나누고 베풀며 삶이라는 꽃과 열매, 음악과 문학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조금씩 생활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마스크를 완전히 벗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러고보면 잃은 것이 많지만 얻은 것도 많은 것 같다. 새삼 가족의 소중함, 가정의 소중함을 느끼게도 했고,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인간을 다시 보게도 되었고, 어느 것이 무엇이 참 소중한 것인가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긴 했지만 이걸 통해서 더 값진 것들을 많이 얻었으면 싶다. 산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고 도우며 위할 때 비로소 빛이 나는 것 아닐까. 새삼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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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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