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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0-29 06:35:08
  • 수정 2022-10-29 06: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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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음한잔, 나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계영배 즉,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잔’입니다.

부제는 ‘정녕 그 잔을 다 채우려 하시나이까?’입니다.


여러분, 잔은 채워야 맛이라고들 하지요?

술을 따를 때 잔이 차지 않으면, 뭔가 인색해 보이고, 왠지 정도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잔을 채우다 보면 술이 술잔 밖으로 넘쳐흐릅니다.

이게 물리법칙이지요.

그러나 채우는 맛으로, 나의 넉넉함도 보였고 나의 다정함도 보였으니, 그 정도쯤 버려진다고 아깝다고 할 것은 없겠습니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되지만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그저 딱 맞게 가득 채우려 했을 뿐인데,

넘쳐도 그저 조금 아주 조금 넘쳤을 뿐인데,

어쩌나! 내 잔이 텅 비었나이다! 가 되니 이 무슨 조화 속일까요.


그저 딱 하나만 더 해 100을 채우려던 것뿐인데, 구십구까지 모두 잃다니 ....

그러나 물리법칙에 어긋나는 이런 일이 우리 인생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이것을 과유불급,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오늘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이 아니라 아예 전부를 잃을 수 있음을 말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이미 작고하신 최인호 작가님이 쓴 ‘상도’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상도’는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에 대한 이야기인데, 거기에 ‘계영배’라는 술잔이야기가 나오지요.

임상옥은 조선시대 철종 때 살다간 사람으로, 당시 고승 덕숭으로부터 계영배라는 술잔을 받고 3번째 위기에서 벗어나며, 욕망의 절제를 통해 스스로 만족하는 자족이야말로 하늘 아래 최고의 거부로 나아가는 상도임을 깨닫고, 상도로서 결국 조선 최고의 거부가 됩니다.

계영배는 경계할 계(戒), 찰 영(盈), 잔 배(杯). 즉,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의미이지요.


계영배는 술잔에 술을 약 7부 정도 따르면 술이 그대로 남아 있으나, 그 이상 잔을 채우려 들면, 있던 술도 모두 사라져 버리는 기이한 잔으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흔아홉을 가지면 하나를 더해 백을 채우고 싶어 하지요.

백을 채우면 천을 이루고자 하고, 천을 채우면 만을 이루고자 합니다.

수만을 채워도, 마음 하나는 결코 채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 덕숭스님은 임상옥에게 계영배를 주었지요.


가득 채움을 경계하라!


예로부터 과욕으로 무너지고 패가망신하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봐 왔습니다.

퇴임 후 결코 순탄치 못한 삶을 사는 전직 대통령들에게서도, 기업확장으로 사세를 키워가던 기업가들에게서도, 주식투자로 낭패를 보는 민초들에게서도....

그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 중에는 성실히 노력하며 한발 한발 다져가던 사람들의 사례도 많으니, 우리는 어찌 가득 채움을 스스로 경책하여야 할까요.

현실에서는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가득 채우지 않고 7부선에서 멈추려면, 자신의 크기를 제대로 아는 지혜가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잔에는 소주잔도 있고, 맥주잔도 있고, 막걸리 사발도 있으니까요.

소주잔 정도의 자질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맥주잔인 양 7부를 채우려 들면 그것은 만용이겠지요.

막걸리 사발 정도의 자질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소주잔인 양 7부를 삼는다면, 그것은 비겁함이겠지요.

모두 어리석어 일을 꾀하기 적당치 않으니 자신을 냉철하게 통찰하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자신의 크기를 살펴보아야겠지요.

내가 어떤 일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지.

처음 일을 도모할 때는 누구나 스스로 조심하고 겸손하여 굳이 가득 채움을 경계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 잔의 1부를 채우고, 2부를 채우고, 3부를 채우고, 4부를 채우고 ...

이때까지는 자신의 일이 되어감이 주위에서 도와주고 운이 받쳐주어,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저 모든 것이 감사이고 축복이라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러다 5부를 채우면 이제 서서히 ‘나’라는 놈이 머리를 들기 시작하지요.

‘내가 잘나서’라는 생각이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6부, 7부를 채워가면서 이제 마음은 교만이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해, 잔을 다 채운 후의 그 다음도 어렵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논 40-50 마지기를 가지고 있을 때는 100마지기는 별로 생각지도 욕심도 없다가, 차차 70, 80마지기를 갖게 되고 막상 아흔아홉 마지기를 갖게 되면 100마지기를 채우지 못해 안달합니다.

7부까지 채울 때까지는 그럴 줄 몰랐는데, 9부까지 채우니, 가득 채우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힙니다.

아! 이거로구나!

가득 채움을 경계한다면, 가득 채우지만 않으면 될 텐데, 왜 굳이 7부를 넘지 말라고 했는지.

가득 채우지 않으려면, 가득 차기 훨씬 전에 그쳐야 함을.

이미 7부를 넘어 8부, 9부에 이를수록 더욱더 그칠 수 없기에 ...


이제 하나의 의문이 남습니다.

계영배는 단지 가득 채움을 삼가라고만 한 것일까?

우리는 결코 그 잔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나 임상옥은 조선 최대의 거부가 되었으니, 그 잔을 채우고 그 잔을 넘어선 것은 아닐까?

아! 그렇구나.

임상옥은 그 잔을 채우고 그 잔에 머물지 않고 아예 그 잔을 더 큰 잔으로 바꾸었구나.


가득 채움은 임계치에 이름을 말합니다.

임계치는 “어떠한 물리 현상이 갈라져서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계의 값”이라는 의미이지요.

쉬운 예를 들자면, 물이 99도까지는 액체 상태로 있다가 1도가 더해져 100도가 되면 수증기, 즉 기체가 되어 증발하기 시작합니다.


즉, 비록 1도 차이지만 이후 전혀 다른 현상이 진행되는 것이고, 따라서 1도 이전의 세계와 1도 이후의 세계에 대한 접근방식은 전혀 달라져야 합니다.

1도 이전의 물은 티스푼으로도 뜰 수 있으나, 1도 이후의 기체는 국자로도 잡을 수 없는 이치이지요.


1도 이후의 세계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종전의 내가 그 세계로 진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지요.


계영배는 단지 가득 채움을 경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면 그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라! 그렇지 못하면 멈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임상옥은 7부에 머무르며 더 큰 세상을 준비했고, 다시 그 더 큰 세상에서도 7부에 머무르며 더 큰 세상을 준비해, 결국 조선 최대의 거부가 된 것이 아닐까요.


이제까지는 계영배의 채움에 대해 주목했으니, 이제는 계영배의 비움에 대해서도 주목해보지요.

계영배는 비움도 이야기하고 있지요.

적어도 3부는 비워두라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채움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의 삶은 여백의 삶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동양화를 보아도, 간결한 붓 터치만으로 형태를 나타낼 뿐 나머지는 여백의 공간입니다. 여백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지요.


여백이 있어 형태는 더욱 드러나고, 여백이 있어 보는 이는 그 공간에서 상상하고 꿈꿉니다.

비교해 서양화를 보면, 때로는 세계적인 명화에서조차 기름 갠 물감으로 덧칠된, 꽉 찬 화폭에 압도되어, 작가의 작품의도를 그저 강요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요.


여백은 해석의 공간이고, 상상의 공간이며, 창조의 공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그것이 돈이 되었든, 권력이 되었든, 명예가 되었든, 단지 하나만으로 채우려 할 때, 우리는 시들어갑니다.


자기 삶의 70-80%는 자신에게 요구되는 일에 쏟을지언정, 나머지 20-30%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빈 공간으로 허용함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끝으로 계영배는 좋은 것도 족함을 알고 그치라는 교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 좋은 일에 대해서도 너무 극단으로 치달리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자식에게, 부하직원에게 너무 과하게 질책하지 않았었는지,

내게 놓여진 상황에 대해 너무 암울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살피라고 말합니다.

계영배는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족함을 알고, 돌아보고 살피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럼에도,

정녕 그 잔을 다 채우려 하십니까?

정녕 끝을 보려 하십니까?

그럼 어찌 해야할까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한잔, 나로부터의 자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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