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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7-04 22:42:31
  • 수정 2022-10-09 16: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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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누구에게나 싱아를 먹었을 때처럼 입에 침이 고이며 신맛이 도는 단어들이 있을 것이다. ‘이라던가, 조금은 식상할 수도 있지만 사랑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 하나가 되면 왠지 이 나이에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그레지거나 두리번대며 누가 보는 사람 없나 눈치를 보는 마음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은 비단 나만의 현상일까. 하지만 내게 그런 첫사랑의 추억을 물어오면 쉽게 그런 감정에 휘말린 사건 같은 건 없을 것 같다가도 살그머니 가슴 저편에서 아니야 있어 하며 화롯불의 불씨 살아나듯 일어나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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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되어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어느 날 쪼그만 여자애가 전학을 왔다며 우리 반에 들어왔다. 이름이 무슨 종희였는데 나중에 우린 종이라 부르며 놀렸다. 그때 우리 또래의 가시나들 같지 않게 짧은 치마에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 앙증맞은 모습의 아주 조그마한 여자애였다. 우리 학교로 전근 오신 선생님의 딸이라고 했다. 그날 나는 못 볼 것을 본 아이처럼 콱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씽긋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는 3학년짜리 내 가슴에 살아있는 인형처럼 와서 폭 안겨 버렸다. 아니 나 혼자서만 가슴에 안았다. 그러나 정작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말을 걸어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날 그런 감정의 순간 이후에 특별히 남아있는 기억은 없다. 그러니 그걸 첫사랑의 기억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이성을 향해 느껴보던 첫 감정이었다는 것에서 감히 첫사랑의 감정 운운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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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교회에서 만난 J고에 다니던 k였다. 그때 J고는 고급 군인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나보다 한 학년 아래였던 그녀는 늘 그 멋진 교복을 입고 교회에 왔었고 내게도 사근사근 오빠라며 잘 따랐다. 정갈하게 입은 멋진 교복도 좋았지만 꼭 내게만은 아녔을지 몰라도 다정하게 오빠! 오빠!” 하던 그녀가 너무 좋았다. 매 주일 교회에 가는 즐거움 중 하나가 그녀를 보는 것이었다. 학생회 활동을 한다며 이것저것 함께 무언가를 하거나 같이 있는 순간이 너무나 달콤하고 짜릿하고 감미로웠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눈을 마주치거나 할 만큼도 용기를 내지 못했고 해서 한 번도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사실 난 지금까지도 정면으로 사람의 눈을 들여다볼 정도로 마주 보는 짓을 못 한다. 해서 사람 얼굴을 확실히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숫기가 없고 얼굴 바라보는 것도 못 하는 나의 버릇이기도 했다. 나 혼자만 좋아하는 마음을 가졌을 뿐 그런 감정을 직접 전하지도 그녀가 느낄 만큼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곳을 떠나게 되었고 내 어려운 상황은 더 이상 그녀에게 특별히 연락을 하거나 할 형편도 되지 못해 멀어지고 잊혀져 버렸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오랫동안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


그녀는 나랑 같이 당시 유행하던 여러 교회들이 주최하는 문학의 밤에도 참가했었는데 내가 상을 받으면 나보다도 더 기뻐했던 기억이 그녀와의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오랜 후 내가 문단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혹시 그녀의 이름이 문단 어디엔가 있을까도 찾아보았는데 그건 그녀도 문학을 좋아했으니 어느 장르건 글을 쓰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그렇게 되면 다시 만나볼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설렘 같은 게 있어서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K와는 다른 감정으로 나보다 한 살 위인 J 누나를 좋아했던 기억도 난다.


역시 교회에서였다. K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상대였다면 J 누나는 기대고 싶은 그런 감정의 이성이었다. 누나와는 교회가 끝나면 빵집에도 몇 번 갔었던 것 같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주고받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도 사랑의 감정일까 의아스럽지만 그 많고 많은 간난의 세월을 살아왔으면서도 동화처럼 가슴에 살아있는 것을 보면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기에 아름다운 추억의 그림 한 장처럼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지게도 한다.


사실 50년도 더 지난 옛 생각들이다 보니 아련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첫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리니 생각나는 얼굴들이라 그저 감사하고 지금쯤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새삼 궁금하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지난 것은 그립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 그걸 추억이라고 한다.


바람결에 되살아나는 작은 불씨처럼 없는 듯 있다가 살아나는 추억의 기억들 특히 사랑의 감정은 이렇게 이 붙으면 더욱 애틋해지고 콩닥콩닥 가슴 뛰는 작은 전설들이 된다. 두근댐과 설렘의 기억으로 사랑이란 말은 그래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 같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기에 늘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살아갈 힘을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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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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