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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5-25 23:28:03
  • 수정 2022-10-09 16: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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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내가 남을 위해 산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루 24시간 중 얼마란 가당치도 않을 것 같고 1365일 중 몇 시간도 그렇겠고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날을 다 한다 해도 얼마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온 많은 세월 그 많은 시간을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았단 말인가. 그럼 나는 이 세상에 왔다가 기껏 내 몸만을 위해 살다가 죽는 존재란 말인가. 순간 온몸의 힘이 다 빠져버리는 것 같았다.


한갓 미물인 벌레조차도 그렇게 살다 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아주 작은 풀꽃 하나도 자신이 생명처럼 만들어낸 꿀을 벌이나 나비에게 주고 피워낸 꽃으로는 보는 이를 즐겁게 해주지 않는가.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그 수많은 세월을 저만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부끄럽고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스스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의 의미를 따라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유독 사람만은 왜 그렇지 못한 것일까.


신문 기사를 보았다. 자기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했단다. 건강한 그는 한쪽 신장만으로 건강 유지가 가능하단 말에 선뜻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가 대단하다는 생각만 했지 나도 그렇게 해보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엄두도 못 내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을 납덩이처럼 누르는 게 있었다. 장기가 아닌 골수 기증도 한다는데,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커다란 주사기를 생각하자 몸도 마음도 움츠러 들어버렸다.


그러다가 이런 나도 할 수 있다고 시작한 것이 헌혈이었다. 골수이식도 겁이 나고 사후(死後)라지만 장기 기증도 왠지 겁이 나서 겨우 나와 타협한 게 1년에 서너 번의 헌혈이었다.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게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어느 날 혈압이 정상보다 높아져버렸다. 결국 안전하게 혈압 약을 먹으라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그렇게 해 버린 순간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헌혈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살아온 날을 돌아본다. 이만큼 내가 살아온 것도, 이만큼의 내 것이 생긴 것도 기적이다. 내 삶은 순전히 사랑의 빚인 게다. 내가 한 것이라곤 알게 모르게 건네어지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주어지던 사랑의 젖을 날름날름 빨아먹기만 했었다.


요즘은 못 하지만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인이고 수필가이셨던 금아 선생의 기념관에 도슨트(docent) 봉사를 나갔었다. 열한 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곳에 들른 사람들에게 설명도 해주고 말벗도 되어주었다. 그러나 그 또한 내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다. 아이들에게선 천진함과 자유로움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돌고 혹여 그들이 묻는 것에 대답을 해주다 보면 그 맑은 눈동자 속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찌들고 떼에 절은 내 마음이 그들로 인해 씻어지고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나보다 연세 드신 분들에게선 그분들의 여유로운 삶을 배우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는 작은 나눔으로도 감사와 기쁨이 오갔다. 자원봉사라는 거창한 말이 내겐 너무 큰 무게를 느끼게 한다. 사실 이런 시간은 나로 하여금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 자각케 하고 인격적 성장과 발달 뿐 아니라 잠재능력을 실현시켜 주는 기회가 되게 했다.


15년 전 200712월 초 태안 앞바다의 서해안 원유 유출 사고 때를 잊을 수 없다. 그때 세계는 원상회복에 최소 10년 이상 최장 1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며 겉으로는 너나없이 한국의 불행을 안타까워했었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던 자원봉사의 행렬들, 난 그때 겨우 하루 제거 봉사에 나갔을 뿐이지만 13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직접 기름 제거에 참여했으며 엄청난 성금이 모아졌다.


손과 손, 마음과 마음이 합해진 힘은 사고 발생 2년 만에 사고 전과 유사한 환경으로 회복되었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게 했고 이에 세계인들이 혀를 내둘렀다. 불행한 일을 보면 내 일보다 앞서서 나서는 사랑의 마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선뜻 나서는 그게 바로 우리 고유의 두레 정신이고 봉사정신이 아니겠는가.


지난해 봄은 유달리 더웠었다. 가뭄에 덥기까지 해서 농사하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힘들었다. 시골에 손바닥만 한 땅이 있는데 거기에 고구마를 심기로 했다. 하필 아내와 고구마를 심기로 한 날은 영상 30도의 햇볕 뜨거운 날이었다.


고구마 순을 꽂기 위해 꼬챙이로 땅을 뚫는데 꼬챙이가 들어가질 않았다. 억지로 몇 개 하고 나니 금방 손바닥에 물집이 생겨버렸다. 고구마 순은 꽂는 순간에 말라 버렸다. 안타까운 마음에 주전자로 물을 떠다 고구마 순을 꽂은 자리에 조금씩 부어주었다.


내가 한 것은 거기까지였고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고구마 순이 내 팔뚝만한 고구마를 땅속에 만들어냈다. 곡괭이와 삽을 동원해 고구마를 캐며 나는 수없이 입속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한 것은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도 않은 땅에 꽂은 여리디여린 고구마 순이었는데 얼마나 힘들게 아파하며 메마른 땅에서 생명의 뿌리를 내렸고 어떻게 이렇게 튼실한 고구마까지 열게 했는가. 그 아픔 절망 슬픔 고통이 가슴으로 절절히 느껴져 와 고구마가 캐어져 나올 때마다 나는 감격과 감사와 미안함의 눈물을 억제하질 못했다.


나는 봉사란 말에 늘 두려움을 갖는다. 감히 내가 무슨 봉사를? 하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내가 뒤늦게 나의 교만과 이기적임을 깨닫고 작은 섬김을 시도한 것조차도 다분히 고구마 심기와 같은 더 큰 이기적 바람이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 것도 나중에 꽤 많은 사람들과 고구마를 나눌 수 있었기에 부끄럽지만 올해도 고구마 농사를 시도할 것이다.


바쁘다는 이 순간, 조금 힘겹다는 이 순간이 바로 나의 전성기임을 감사한다. 그러나 결코 길지 않을,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세월이고 시간, 그가 가는 만큼 나는 힘이 빠질 것이고, 나는 그를 계속 따를 수 없을 것이다. 종심(從心)의 나이도 지난 지금까지 내 삶의 8할은 사랑의 빚인데 남은 시간에 얼마나 갚을 수 있을까. 그나마 갚는다고 하는 것조차도 더 얻어오는 결과만 되는 것 같으니 사랑의 빚쟁이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마음만 급해진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작은 것이 높은 산을 정복한 기쁨이나 보람보다 크고 아름답고 행복한 것임을, 그리고 나처럼 갚아도 갚아지지 않을 사랑의 빚쟁이인 것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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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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