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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4-26 22:29:40
  • 수정 2022-10-09 15: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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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우리 가족이 온라인상에서 소통하는 가상의 방이 하나 있다. 분가하여 흩어져 사는 식구 다섯 명과 아기 하나가 그 공간에서 문자와 사진, 영상으로 매일 소식을 주고받는다. 두 아들이 성인이 되고 오래 전부터 적막해진 집안에 뒤늦게 태어난 손녀는 온 가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혼 7년 만에 그것도 팬데믹 기간 중에 태어나 건강하게 두 돌을 넘긴 아이는 어느새 어린이집 원생이 되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들이나 혼자 손으로 아이를 키우며 가사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들에게 어린이집은 더 없이 고마운 곳이다.


어린이집에서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에게 밥과 간식을 먹이고, 산책을 시키고, 낮잠을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배변 훈련까지 맡아서 해준다. 부모가 퇴근하기 전에 하원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할머니나 베이비시터가 데리러 가가도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아이들이 늦은 시간까지 어린이집에서 머문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어린이집에 사정이 생겨 문을 닫거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생겨서 아이들이 집에서 쉬어야 할 경우에는 부모들이 직장에 휴가를 내거나 재택근무 신청하느라 비상이 걸린다.


젊은 부모가 아무런 도움 없이는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형편이라 격일로 손녀 밥을 해주러 아들집에 오가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주말 일주일이나 그 열흘 정도 자기네 식구끼리만 지낼 테니 당분간 오지 말라는 연락이 왔다. 안타깝게도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오미크론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손녀가 확진된 날 저녁에는 다른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이, 다음 날은 며느리가, 그 다음 날은 아들이 차례대로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햇수로 4년째 계속되고 있는 팬데믹 상황을 매일 뉴스나 SNS상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 가족 여섯 명 중 네 명이 동시에 감염이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을 못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변함없이 어린 손녀가 밥을 먹게 해주는 일밖에 없겠다 싶어서 연예인들이 응원의 의미로 보낸다는 ‘밥차’ 서비스를 하기로 했다. 말이 ‘밥차’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로서는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음식을 배달할 수밖에 없다.


최고의 고객인 29개월 손녀에게 뭘 먹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평소에 먹던 ‘연근조림, 무나물, 계란말이…’를 먹고 싶다고 했다. 물론 어른들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있지만 식사를 잘하면 회복이 좀 더 빠르리라 싶어서 음식을 만드는 손에 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열심히 일에 열중하다 보니 이번 주에는 홀로 계신 구순의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했다. 방향이 다른 어머니 집과 아들의 집에 하루에 오가기는 어렵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쓰는 2인용 경차라도 장만을 할 걸 그랬나싶다. 아


예 멀리 있는 남편에게는 필요한 물품을 택배로 주문해서 보내고 있다. 얼굴을 대면하지 못해도 누군가 달려와서 집 앞에 음식을 배달해주는 밥차 서비스는 이래저래 가족이 둘러앉는 식탁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쩔 수 없이 한 가닥 생명줄이 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 코로나 감염이 심각하던 시기에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무조건 2주일씩 자가격리를 했다. 그러다 다시 그 나라로 돌아가서 2~3주씩 격리를 했는데 혼자 있는 답답함 이상으로 매일 똑 같은 현지 음식 때문에 견디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 다니러온 동생은 귀국하면 정말 먹고 싶은 게 많다고 했다. 다행히 동생에게는 미식가 친구들이 많아서 자가격리 하는 2주일 동안 매일 숙소 앞에 서울 시내 맛집에서 배달된 각종 요리들이 줄을 이었다.


오죽하면 하나 밖에 없는 누나인 나는 한 번 밖에 배송 서비스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얼굴은 보지 못하고 밥을 문 앞에 두고 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었다.


예전에는 학교 갈 때 매일 간편한 도시락을 쌌고, 소풍이나 나들이 갈 때는 찬합에 별미 반찬과 밥을 층층이 싸들고 나갔다. 농사를 짓고 공사를 할 때는 식사뿐 아니고 새참을 만들어서 날라다 주었다. 자전거로 짜장면을 날라다주거나 리어커에 두부나 채소를 팔러 다니던 풍경은 한 세대 전에 갔고 오토바이를 탄 배달의 민족들이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이미 배달 로봇이 등장했다는 뉴스가 있는 걸 보니 머잖아 날아다니는 드론의 배달이 흔해지는 날이 오리라 예상된다. 그런 시대가 오더라도 우리 손녀는 할머니의 소박한 밥차 서비스와 자연주의 반찬 맛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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