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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칼럼] 언 강을 건너는 법 2021-01-16
진화 이경희 khgina@naver.com


▲ [사진=Why Times]


동네 공원을 지나가다 보니 사람이 아무도 없고 휑하니 비었다. 운동기구, 놀이기구와 평상은 이용하지 말라는 경고문구와 함께 포장용 테이프가 둘러쳐져 있다. 겨울이라 공원에 사람이 많은 계절은 아니지만 평생 살면서 소수의 사람이 모이는 것도 불법이 되는 건 처음 겪는 일이다. 여름에는 바닷가, 겨울에는 스키장에 북적대던 사람들과 연말연시 회식을 한다고 모여서 왁자지껄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 백화점과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고, 공항에서 활기차게 트렁크를 끌며 오가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젊은이들로 북적대던 대학가도 한적하기만 하다.


지난 10월에 첫돌을 맞은 손녀는 상황이 좀 나아지면 돌상이라도 차려줘야지 했는데 따로 사는 가족은 다섯 명 이상 만날 수가 없다니 더욱 난감한 일이다. 돌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결혼식이나 장례식 역시 제한된 인원만 방역지침에 따라 모이되 식사조차 나눌 수 없으니 잔치나 파티는 어쩌면 영화와 소설에나 나오는 옛일이 되는 것이 아닌지 불안한 예감이 든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기차 타고 수학여행을 갔던 일이나, 교회에서 며칠씩 모여 성경학교와 수련회를 하던 시절이 꿈만 같다. 성탄전야에 모여서 새벽송을 돌고,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종합병원에 찾아가 복도에서 찬양을 하던 일, 매년 해가 바뀌는 제야에 송구영신 촛불예배를 드리던 때가 있기는 했던가. 눈에 미끄러지며 교회에 오가던 길이 마냥 그립다.


평소 글을 쓰는 온라인카페에서 100년 전부터 10년 단위로 그 시대의 의식주 자료를 찾아 올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1960년대의 사진과 동영상 자료를 맡아서 올렸는데 한강에서 겨울에 얼음을 지치고, 여름에 수영을 하며 노는 사진을 보고 한강에서 수영을 하다니하고 놀라는 이들이 꽤 있었다.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지만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추이로 보면 앞으로의 세계는 더 낯설게 바뀌고 달라지리라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게 어렵고 집안에 오래도록 머물러야 한다면 어떻게 생활하는 게 좋을지 궁리를 하며 사례들을 찾아보았다.


이제는 프리랜서로 혼자 사는 20대 여성과 요리를 직접 해먹는 30대 남성, 도시에서 100만원으로 살아가는 40-50대의 독거 중년이나 전원에서 미니멀라이프를 누리는 주부와 은퇴 노부부, 자신의 말기암 병상일기를 지속적으로 유튜브에 올리는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어떻게 해서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다각적으로 탐색하는 사람들의 흐름이 보인다.


안동에 사는 지인이 겨울 호수에서 얼음썰매 타는 사진과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 그의 고향집에 있는 정자와 연못은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며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 여름, 가을에는 물풀을 걷어내며 유유자적 배를 타고 겨울에는 얼음썰매를 지치며 즐겁게 추위를 이겨낸다. 자신의 집안에서 하는 활동이니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으면서 네티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예전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회사원이나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생산직 노동자처럼 땀 흘리며 반복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본인이 잘하고 즐기는 일을 구독자들과 공유하면서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그 안에서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긴 겨울을 보내며 글 쓰는 일 외에 무언가 손으로 만드는 일을 시도했다. 아로마 DIY 제품을 만들어서 공예작품이나 생활용품과 물물교환을 하거나 쿠폰을 주고받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면 거기에는 반드시 상부상조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파트너들이 나온다.


겨울이 깊어지면 고인 물뿐 아니라 흐르는 강물도 얼어붙는다. 살얼음이 낄 때 함부로 들어가면 위험하기에 얼음이 꽁꽁 얼 때까지 기다렸다 걸어서 건너거나 썰매를 타고 얼음낚시를 해야 한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에 불안감과 두려움이 앞서지만 봄이 오면 강물은 저절로 풀리게 되어 있다.


언 강에 갇혀 있는 배를 밀어낸다고 얼음 위에 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호흡을 길게 하여 이 겨울 강이 풀리기를 기다리며 이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풀려나가는지를 낱낱이 기억하고 기록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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