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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 칼럼] 역사교사로서 바라본 1910-1945년의 한국인 사회 2020-12-04
배민 whytimes.pen@gmail.com


▲ [사진=Why Times DB]


한국역사에서 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시기는 현재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일제 강점기’라는 개념으로 지칭되고 있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국사 편찬위의 집필 지침에 충실히 따라 출판된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들은, 한국인들이 과거 20세기 전반기에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와는 상관없이, 지금의 정치적 필요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 즉, 현대 한국사 학자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작한, 인위적인 집단적 관념을 충실히 담고 있다.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역사관을 가진 내게는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여 새로울 것도 없는 일제 시대 역사 서술의 비이성 성의 근본 원인은 그 기저에 흐르는 역사관의 일관된 편향성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사의 서술 시각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인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는 집단주의적 철학과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이 이데올로기는 한국사 교과서 상에서 소위 ‘열린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상 실현’이라는 명제로 합리화된다. 하지만 이 명제는 정확하게 역사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사고를 ‘닫히게’ 만들고 ‘비현실적’ 현실 인식을 강화시키게 된다. 즉, 학생들은 그 결과 배타적인 집단주의적 열정을 가슴에 품도록 요구받게 된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프랜차이즈화한 수많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프로젝트들을 적극 수용하고 지지하도록 세뇌될 준비가 된다. 가령 교육의 경우 혁신학교, 민주시민 교육, 수시 전형 확대 등도 모두 학생 개인의 지적 능력 개발보다는 공동체적 교육이라는 비전을 지향한다. 이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실제 교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집단화된 ‘학생 공동체’의 인위적 상정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이는 지식보다는 체험, 특히 갈등 해소나 협력적 문제 해결 등에 초점을 두는 교실 수업 활동이 강조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학생들 사고에 있어서는 궁극적으로 그들의 개인주의적 지성이 점차 소멸되어 나감으로써, 집단주의적 사회의 견고한 유지라고 하는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충실히 따른다.


올해 2020년 한국사 교과 수업에서 나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진도 나가는 수업 내용은 동영상으로 촬영 편집하여 학교의 온라인 플렛폼에 업로드하고, 가급적 학생들이 등교하는 교실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의 탐구 발표와 이후 이어지는 학생들 서로 간의, 그리고 학생과 교사 간의 질의 응답 및 자유로운 토론 위주의 활동을 해나갔다. 특히 2학기에 들어와 그 내용에 있어 일제 시대의 역사 내용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졌고 이에 대해 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발표, 그리고 질의 응답 및 토론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학생들의 발언을 청취할 수 있었다.


학생들과의 질의 응답 및 토론에 있어서 나는 내 시각을 직접적으로 거의 밝히지 않는 편이다. 나로서는 현재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이 한국사에 대해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자체를 들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고, 나의 학생 교육 원칙인 ‘태도는 예의 바르게, 생각은 자유롭게’에 입각해서 토론 시 표현되는 학생들의 사고에 대해 전적으로 그들의 견해를 존중하는 태도로 수업을 지도하였다.


학생들은 교과서 상의 논리에 충실하게 발표 내용을 준비하고 이를 교실에서 발표한다. 한 학생이 토지조사사업이 일본인이 한국에서 쉽게 토지에 투자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 사업이었음을 발표하였다. 나는 물었다. 그런 목적을 의도하였음을 어떤 근거로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학생은 그 사업의 결과로 총독부 소유 토지가 늘어났고 이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겨 일본인 이주민에게 값싸게 팔았다고 똘똘하게 얘기했다. 보통의 학생이 그 정도로 선후의 논리적 관계를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경우를 잘 못봤기 때문에, 나는 발표준비하면서 꽤 (교과서 내용을 잘) 공부했네 하고 생각하고 발동이 걸려 좀 심화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총독부 소유토지가 늘어난 결과를 가지고 이를 토지 조사사업의 의도였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그리고 동양척식주식회사는 한국인 지주건 일본인 지주건 땅 값을 높게 부르면 돈을 받고 땅을 파는, 수익을 추구하는 회사인데 굳이 일본인 지주를 위해 봉사하는 사업 목적을 가졌으리라고 어떤 근거로 말할 수 있는가? 당연히 총독부가 대놓고 공식적으로 토지조사사업의 사업 목적이 조선의 토지 약탈이라고 천명하지도 않았고 그랬을 리도 없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역시 그 사업 목적이 일본인 지주에게 조선의 토지 헐값 매각이라고 천명하지도 않았고 그랬을 리도 없다.


교과서 상의 위의 모든 (학생이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공부하고 외우는) 역사 서술들은 한국의 역사가들 (현대의 역사 학자들 포함)이 정황적으로 추론하고 심증에 입각해 단정함으로써 성립된 서술일 뿐 실제 역사 사실이라고 주장할 역사학적, 실증적 근거는 없다. 실제 해당 내용 교과서에서 학생들에게 소개된 관련 사료들(아마도 가장 집필진 자신들의 역사적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료를 고르고 골랐을 텐데) 어디에도 그러한 추론을 검증할 수 있는 단서는 찾을 수 없다.


나에게서 반론 질의를 받은 학생은 흥분하여 교과서 상에 나와 있는 서술들을 자신의 논지의 근거로 동원하기 시작하였다. 학생의 흥분된 어조는 교과서 저자들의 확고하고 단정적인 문체만큼이나 확신에 차 있었다. 학생은 일제의 의도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교과서 내용, 가령 회사령을 공포하여 한국의 자본 축적을 차단하려 했고, 한국의 광산 약탈을 목적으로 광업령을 제정했고, 총독부 재정 수입 확대를 위해 인삼의 전매 사업도 벌였음을 내게 항변하였다.


하지만 그 학생에겐 불행하게도 인용된 교과서 서술 중 엄밀히 말해 어느 것도 역사학적 합리성의 기준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주장은 없었다. 나는 한국사 교과서에서 회사령과 광업령의 의도를 기술한 부분이 마치 북한 교과서에서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적 행위를 묘사하고 있는 문구와 어조가 너무나 흡사하다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지만, 학생을 몰아세우고 싶진 않았다. 나는 단지 그 근거가 어디에 있을까라고 조용히 되물었다.


실제로 교과서는 뒤에 나오는 단원에서, 1920년대에 와서 총독부가 스스로 회사령을 폐지한 것을 놓고 ‘일본 기업이 한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큰 이익을 얻었다’고 기술함으로써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내세운다. 현대 WTO 체제 하에서 자국의 산업을 위해서도 보호무역하기가 쉽지 않은데, 20세기 초에 일본이 식민지 한국의 산업을 일본 본국 기업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온전히 식민지를 위한 (본국 산업의 희생을 감수하는) 중상주의적 보호무역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주장일 뿐이다.


이러한 논리는 한국사 교과서의 일제 시대 내용에서 ‘착취와 약탈’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대부분의 총독부 경제 정책에 거의 동일하게 적용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영국사에서 왜 곡물법이 제정되었다가 폐지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걸까? 소위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 특히 한국인들 중에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신념으로 열심히 독립을 위한 사회적 활동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는 1920년대에 일제가 추구했던 정치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한 축은 자유주의였다. 이 간단한 사실을 한국사 교과서는 절대 인정할 수 없어 한다. 실제로 이 자유주의를 내걸었던 제국은 한때 국제 사회의 인정 속에 1940년에 열릴 올림픽 개최권까지 받아내기도 했다. 물론 길게 가지 못하고 전쟁과 군국주의가 본격화되는 1930년대 중후반에 가서 그 자유주의의 분위기는 막을 내리긴 하였다.


문화통치가 본질일까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이 본질일까? 한국의 역사교육은 어느 것이 피상적인 현상이고 어느 것이 본질이 되는 원리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이는 의도적일 것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한국사 일제시대 서술의 기본 시각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된 민족 사회주의, 즉 전체주의이자 반자유주의임을 밝히면 좋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주의 한국 역사가들이 1910-1945년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2차 세계 대전의 추축국의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연합국의 이데올로기, 즉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입장에 서 있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 학생에게 총독부 재정 수입확대를 위해 인삼 전매 사업을 실시한 것이 뭐가 문제가 되는지 물었다. 솔직히 자유시장론자인 나는 인삼 전매 사업에 동의하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도 각종 물산에 왕실이나 행정 관청이 필요하면 수시로 전매를 시행했었다. 사실 이보다 더 심한 (아무런 대가 없는) 수탈 행위랄 수 있는 공납제도나 부역제도 등이 조선에선 법적으로 강제되었다. 오히려 이런 제도는 조선총독부 통치하에서 비로소 사라지게 되어 더 이상 사람들은 법에 지정된 재산세와 소득세 등의 명목 외에는 자신의 소유물이나 노동력을 뜯기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현물과 노역을 징발하지 않는 원칙은 1940년대 태평양 전쟁 와중에 공출과 징집이 시행되기 이전까지는 계속 이어졌다.


어떤 면에서 봐도 일제 시대에 들어와 (민본주의를 내세웠던 조선시대 내내 계속된) 개인에 대한 정부의 착취와 수탈은 비로소 현격히 제한되기 시작하였다. 불법적이고 약탈적인 정부의 탐욕은 조선총독부 통치 하에서 비로소 사라지게 되었음은 분명 아이러니이긴 하다. 심지어 대한제국이 외국과 했던 이권 거래에서도 볼 수 있듯, 이 탐욕의 범위는 국내에 한정되지도 않았다. 가령 운산 금광 채굴권을 따낸 미국 회사는 회사 자본금의 상당액을 고종 황제에게 ‘진상’해야 했고 이는 대한제국 정부와 맺은 계약서 상에 명시될 정도였다. 하긴 성리학과 같은 집단주의 정치 이데올로기 하에서는 공납(여기에는 정기적 상공 외에 각종 별공과 진상이 포함된다)의 명분으로 상인들의 돈을 갈취하는 것에 정부는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학생에게 이런 사실을, 그런 정신적 충격을 주는 발언을 갑자기 할 수는 없었다. 마치 북한 교실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온 내가 받은 느낌을 함부로 내뱉을 수 없듯이, 나는 한국사 수업 토론에서 극히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사실상 개인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악으로, 칼 맑스의 사회주의 강령이나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 등에서 읽을 수 있는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선으로 바라보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이러한 거대한 패러다임에 맞설 수 있을 것인가? 교실에서 나를 쳐다보는 서른 명의 눈 앞에서 홀로선 나는, 거대한 이념적 패러다임의 공간 속에서 개인주의자로서 홀로이 서 있는 나이기도 하다.


1910-1945년의 한국인 사회는 분명 식민지 사회로서의 아픔과 절망을 간직한 사회였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을 직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시대적 정치 이데올로기의 변화 양상을 굴절시켜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후자는 전자와 관계 없이 현재의 학생들, 장차 한국 사회의 성인이 될 구성원들의 사고를 집단주의적 패러다임 속에 억지로 구겨넣는 결과로 이어지게 만든다.


한국의 역사교육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문제일까? 모든 물음에 한꺼번에 답하기는 어떤 역사학자나 역사교사에게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공론화해나가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그러진 우리 자신의 인식을 직시하는 불쾌한 순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그것을 알고 있다고, 모두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난무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어쩔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게 떠들어 대는 사람 들 중에 입법이나 행정뿐 아니라 사법 영역에 있는 자들과 역사학자들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동조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학교의 역사교육은 너무도 당연하게 국민 정신교육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 것이다. 집단주의적 감성이 지칭하는 것이 곧 진실이 되어버리는 이러한 사회는 역사 교사가, 역사학자가,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일까 찾아 나서는 탐험을 할 수가 없다. 이미 진실은 사회의 대중이 알고 있는 (혹은 그들이 굳게 믿는) 그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21세기 사상의 감옥. 한국 사회는 이미 그 감옥의 문턱에 들어섰는데, 이는 바로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역사교육의 공로이다.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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