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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메디컬 기업인 시리즈_한미약품 임성기(1) 2018-02-11
리고든 3rd_way@naver.com
-50년 넘게 업계에 종사하면서 작은 약국에서 시작해 위기 때마다 성장해 업계 1위 제약사 만든 남자
-베트남전 다녀온 남성들 임질과 매독에 시달려도 치료 어렵다는 데 착안해 블루오션으로 적극 개척
-‘성기’ 마케팅으로 자신의 이름(?) 강조한 대형 간판 세우고 호객 행위… 종로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라

사실 한국에서는 미국에 비해서는 자수성가에 대한 좀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뭐 개룡남이란 말 속에는 뭔가 모를 안좋은 이미지가 들어 있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통수를 잘 친다는 둥 매너가 없다는 둥 열등감이 쩐다는 둥, 결혼 상대로는 별로라는 둥 별별 소리를 다하죠.

 

하지만 뭐 중요한 것은 실력이고 금수저는 금수저 나름대로의 전통을 이어나간다는 역할이 있다면,
자수성가 역시 사회의 역동성을 가져오는 꿈과 희망의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는 제약업계의 의사 출신 금수저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편이였고
이번에는 약사 출신 자수성가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편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사실 임성기 회장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요. 통수를 아주 찰지게(?) 잘친다, 약은 안 만들고 주식투자만 하냐, 특히 의사들에겐 과거 리베이트 쌍벌제의 주역으로 죽일 놈(?) 급으로 취급받기도 했죠.

하지만 “잔잔한 바다에는 누구나 선장이 될수 있다”는 예전 어느 페친 분 말씀대로 그 사람의 실력과 리더십은 결국 위기가 올 때 그걸 기회로 바꾸느냐 아님 그냥 쓸려가느냐에 달려있는거 아니겠습니까?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업계에 종사하면서 작은 약국에서 시작해 위기 때마다 성장해 이젠 업계 1위 제약사를 만든 남자,
80이 다 된 나이에도 매일 5킬로씩 걷고 강신호 회장님 마냥 자사의 성기능치료제 구구정을 먹으며 항상 서있는 남자(주의 거기가 서있는 게 아니다 항상 걸어다녀서 서있는 거닷 헉! 아닌가ㅋㅋ)
이름마저도 매우 ‘성기’스런(?) 남자 한미약품 임성기 편입니다. ㅋㅋ

 

1940년 김포 통진읍 통진고등학교(주의; 흉악스런 통진당과는 무관하닷 ㅋㅋ)을 졸업한 임성기는 중앙대학 약대를 졸업하고 페이약사로 있다 63년 지금은 할배들의 핫플레이스지만 당시엔 서울의 핫플레이스 종로 동대문에 약국을 내는데요.
바로 유명한 임성기 약국이죠.

 

임대료가 비싼 종로에 약국을 낸 당시 새파란 젊은이 임성기는 파리를 날리자 고민고민 하는데요.
뛰어난 경영자의 기본기 하면 시대 유행을 읽는 능력과 결단력이죠.
임성기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 60년대 후반~70년, 한국 역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당시 60년대 후반~70년은 베트남전이 한창이었고, 한국 역시 베트남전에 참전했는데요.
뭐 한국전에 도와준 미국을 도와준다는 재조지은은 개뿔이고 사실은 먹고살기 어려운 판에 외화를 벌 심산이었죠.
65년부터 73년까지 8년 동안 30만 명 넘는 인원이 자의 타의(?)로 서로 지원해서 베트남전에 참전했습니다.

 

여튼 전쟁이란 총알이 왔다갔다 하는 곳이고, 육체적으로 왕성한 20대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젊은 남성은 결국 유흥(?)에 빠지기 마련이었고, 당시 남베트남에서는 유흥과 성매매가 붐이었죠. 그리고 베트남전에는 전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오는 지라 읍읍의 천국이자 성병의 천국이었습니다.

 

결국 베트남에 갔다온 많은 젊은 남성들은 임질과 매독이라는 성병 양대 산맥의 고통 속에 해매게 되는데요.
지금도 그렇지만 읍읍한 질병인 성병은 쉽게 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질병이었는데요.
그래서 어디 약국이라고 해도 몰래몰래 다닐 수밖에 없었고 당시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던 약국 혹은 병원까지도 진료를 잘 해주지 않았죠.

하지만 이재에 밝은 임성기는 이 블루오션(?)을 자신의 성공무대로 만드는데

당시 약국은 지금의 약국과 달라서 자기 마음대로 항생제 칵테일을 제조해 팔아먹을 수 있었는데요.
물론 살찌지 않고 허약한 사람에겐 스테로이드 칵테일로 건장한 남성(?)으로 재탄생하게 만들어 줬죠.ㅋㅋㅋ
여튼 당시 성병에 고민하고 있던 젊은이들을 겨냥, 성병전문 약국을 만드는데요.
바로 이것이 임성기약국의 시발점이죠.

 

뭐 성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심리에 알맞은 마케팅을 전개하는데요. 바로 소위 찌라시 전략입니다.
찌라시에 임질 매독 임성기약국과 주소 등 짦은 구문만 넣어 어디 유흥가 밀집지역에 뿌리고 다녔죠.
날이 갈수록 은밀한 욕구를 가진 남성들이 모여드는데요.

 

임성기는 자신만의 특제 항생제 칵테일 폭탄(?)으로 매독 임질 환자들의 구세주로 등극합니다.
또 개인비밀 보장을 최고로 해서 전단지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하고 송금만 하면 항생제 폭탄을 집으로 배달해줬다고 하네요.
이 소문이 베트남까지 퍼져서 현역 장병들까지 국제 특송으로 보내줬다고합니다.

 

또한 소위 ‘성기’ 마케팅을 시작해 자신의 이름(?)을 강조한 대형 간판을 세우고 호객 행위(?)를 하는데요.
성기란 이름이 성병환자들에게 또다른 각인으로 작용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죠.
이럴줄 알았으면 이름을 이읍읍으로 하고 강남유흥가에서 비뇨기과 개업 헉! 아닙니다.ㅋㅋ

 

결국 임성기약국은 종로의 핫플레이스(주위 환자들의 거기가 핫하기 때문이 아니닷ㅋㅋ)가 되게 되죠. 뭐 시골 가면 택시기사한테 “어디어디 약국으로 가주세요”라고 하면 신기하게 찾아가듯,
종로에서 임성기 약국 가주세요. 하면 택시기사가 “손님도 읍읍 헉! 아닙니다”라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ㅋㅋ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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