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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메디컬 기업인 시리즈_한미약품 임성기(2) 2018-03-12
리고든 3rd_way@naver.com
-30대 초반에 갑부 된 임성기, 지역 유명인사 반열에 오르고 통진고 동문회장 자리에 오를 정도
-물질특허제 도입되자 업계 관행과 달리 매출 5% 넘는 연구비 투입하고 국내외 약학자들도 고용
-“의사놈들이 리베이트도 먹고 인센티브까지 먹을 게 분명한데 제약업계만 독박… 절대 반대닷.”

사실 임성기 약국이 얼마나 성공했느냐 하면 사실 5년여의 기간 동안 거의 갑부급이 됐다고 하는데요.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임성기는 이미 70년대 중반 지역 유명인사 반열에 오르고 자신이 졸업했던 통진고 동문회장 자리에 오를 정도로 통진고 출신인사 넘버 1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통진통진하니까 성기가 아니라 석기 생각이 헉! 아닙니다.
여튼 임성기는 이미 30대 초중반에 갑부가 되는데 73년에는 모교인 중앙대나 서울대 출신 약사들을 규합, 한미약품공업사를 차려 제약업에 투신하게 되죠.

 

물론 임성기약국이 워낙 잘되는 캐쉬카우라 본격적으로 제약업에 투신하는 80년대 중반까지 계속 경영합니다.
그런데 사실 말이 제약업이지 쉽게 말해 만화 해적판마냥 지금으로 말하면 불법 복제약을 만드는 해적 제약사였는데요.
지금의 복제약이면 특허가 만료되거나 라이선스료를 지급하고 생산하지만 이때는 뭐 그냥 막 만들어 팔고 있었죠.
지적재산이란 게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여튼 약국 경영과 제약업으로 뽕을 뽑았던 70년대가 지나고 80년대가 되니 첫번째 시련이 닥치는데요.
바로 물질특허제도가 86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거죠.
해적판(?) 복제약을 만들 때는 성분이 같아도 제작 방법이 다르면 불법이 아닌데, 제작방법이 같고 다른지는 본인(?)이 판단하는 거였지만 물질특허 제도가 도입되자 결국 라이선스를 납부하는 거밖에는 방법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뛰어난 경영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고 위기를 맞은 김에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는데

 

사실 한미약품은 약사들이 모여서 만든 약사들의 제약회사였는데요.
당시에는 이미 유한, 동아제약 같은 기라성 같은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죠.
그 시기 물질특허 제도가 도입되자 로열티 준다고 영업이익이 계속 떨어지게 되죠.

 

결국 임성기는 신약개발을 노리는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약업제 1~2위도 신약이 안되는데 자기가 신약을 개발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깜깜해지고 말았죠.

 

결국 소위 개량신약으로 눈을 돌리는데요.
사실 해적판 만화도 소위 조선화(?) 작업이란 것이 있어서 가령 격투기 만화 바키같은 경우 해적판에서는 중국 격투기 영웅 레츠(열해왕)이 매우 중국스런 띵호아로 나오고 스토리도 약간 다릅니다.ㅋㅋ

 

결국 개량신약이란 기존 약에 새로운 약제를 넣거나 기존 약제의 구조를 조금 바꾸거나 해서 약간 변형해주는 거죠.
기존 신약개발보다는 리스크나 비용이 적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떻게 기존 약물보다 더 효과가 높은 경우도 있는데요. 이 경우 대박이나는 거죠.

 

임성기의 장점이라면 통수 아니 빠른 공수전환으로 한번 결정하면 모든 리소스를 동원하는 능력이 있는데요.
당시 R&D에 투자하지 않던 기존 제약업계 관행(?)과는 달리 매출5%가 넘는 연구비를 투입하고 국내외 약학자들을 고용하게 됩니다.

 

결국 94년 아모디핀이란 개량신약 고혈압 약을 발표, 대박이 나게 되면서 완전 언더 쩌리급에서 10위권 제약사로 도약하게 되죠.
그리고 한미약품은 기본적으로 약사의, 약사를 위한, 약사들의 기업이라 약사들이 좋아하는 항생제 칵테일용(?) 항생제 분야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영업력을 확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90년대 말 또하나의 시련이 오는데요. 바로 의약분업이죠.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되자 한미약품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지는데요.
원래 약국 중심으로 항생제 팔아먹고, 일반의약품을 파는 것이 주요한 수입이었는데,
의약분업으로 의사처방이 있어야만 했는데 약국 중심의 영업망을 가지고 있던 한미약품은 다시 쩌리급으로 떨어질 위기가 온 거였죠.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임성기 회장은 공수전환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바로 영업분야 예산 인력을 5배로 늘리고 개량신약 중심의 한미약품에서 바로 영업의 한미약품으로 바꿔버리게 됩니다.

 

▲ 개량신약이란 기존 약에 새로운 약제를 넣거나 구조를 바꾸거나 하는 것.


그리고 당시 백신과 전문의약품 제조사였던 동신제약을 인수하게 되면서 그 영업망을 그대로 가져오게 되죠.
여튼 2000년대의 한미약품은 영업의 한미였는데요.

 

뭐 제약사 영업이라고 하면 원장님들에게 강남 나이트 연간이용권( 헉! 오해하지 마시라. 원장님들의 건강을 위한 요즘 유행하는 나이트 런닝 소위 강남달리기 헉! 아닙니닼ㅋ)을 드리고,
어디 아늑한 강남모처 룸에서 20대 여성 도우미(?)와 함께 신약 브리핑 헉! 아닙니닷X2
이외에도 골프비용 지원, 회식비용 지원, 병원 TV 바꿔주기 등등 다양한 방법의 영업활동을 진행하게 됩니다.

 

워낙 영업을 열심히 하니 한미약품은 매출액 기준으로 10위권 밖에서 5위권으로 진입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또다른 갈등이 생겨나게 되죠. 사실 의약분업이 된 것도 약사들이 자꾸 항생제 칵테일 남발 때문인데 이들을 지원한 것이 사실상 한미약품이었고,
과도한 리베이트 지원으로 업체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의보재정이 악화되자 제약업계와 정부는 또다른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어떤 분이 왜 의사는 투쟁력(?)이 없을까요 라고 물어보는 분이 있는데요.
사실 의약분업 시절부터 의사들은 주요 의료 이슈에서 계속 불리하게 몰리면서 실패를 거듭하게 되는데요.
주요한 이슈 중의 하나가 소위 리베이트 쌍벌제죠. 이거 때문에 자살한 의사분도 몇몇 됩니다.

 

사실 리베이트의 등장을 이해하려면 과거 의보와 의사간에 약제비 정산과 관련된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과거는 공시가 제도로 의사가 약을 얼마 주고 사든 말든 의료보험공단에서는 정해진 공시가로 보상을 해줬습니다.
근데 그런 식으로 해주니까 약을 공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사서 더 보상받는 불합리가 있었죠.

 

정부는 이를 시정하기 위해 99년에 실거래 상환제를 시행하는데요. 약값을 실거래가로 보상해 주겠다는 거죠.
근데 이것도 문제인 게 결국 나중에 가니까 병원에서 실거래가 한도까지 약값을 결제하고 실제론 제약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지원받아서 실질적으론 할인된 가격으로 약제를 구입하게 됩니다.
2000년대 리베이트 전성시대의 개막이 결국 의약분업, 실거래 상환제와 궤를 같이하는 거죠.

 

결국 이명박정부에서 다시 한번 제도를 개선할려고 하는데요.
바로 저가구매 인센티브제죠. 쉽게 말해 약제비 상한액보다 싸게 약제를 구입하면 차액의 70%를 보상해주겠다는 거죠.

 

뭐 여기까지는 의사한테 좋은 거 같지만 기존에 많은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있던 제약업계는 반발하는데요.
제약업계 : “사람은 줬다 뺐으면 화를 내는 법인데 의사놈들이 리베이트도 먹고 인센티브까지 먹을 게 분명한데 이거 우리만 독박 쓰는 거 아니냐 절대 반대닷.”

 

결국 당시 영업왕(?) 한미약품을 필두로 한 제약업계는 저가구매 인센티브제 도입 이전에 리베이트 척결을 외치며 리베이트 받아먹은 의사도 같이 잡아가라는 리베이트 쌍벌제 입법안을 내는데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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