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메뉴 닫기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
자유민주주의와 테세우스의 배 [고려대 정경대 07학번 무명의 글] 2018-08-14
조평세 pyungse.cho@gmail.com


교육부는 지난달 교육과정 개정안을 내놓고 행정예고를 거쳐 이달 중 확정하기로 했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모두 ‘민주주의’로 대체됐다.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라는 표현도 사라졌다.


지난 2월 같은 내용의 교육과정평가원 시안이 공개됐을 때는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발표된 내용에서는 원안이 그대로 유지됐다.


이낙연 총리는 시안 공개 당시 “동의하지 않는다”며 “총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정부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공언(公言)은 몇 달도 지나지 않아 허언(虛言)으로 드러났다. 총리 측은 ‘절차적 문제를 얘기했던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만 내놓았다.


이 정부가 혁명을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들이 말하는 ‘촛불혁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자행하는 정치보복과 사법농단 역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


들이 원하는 혁명은 대한민국의 체제를 자유민주주의에서 다른 무엇으로 바꾸는 것이다. 한반도에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다른 세력이 존재하고 있는 이상, 그들의 지향점이 인민민주주의가 아닌지 의심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


민주주의란 정치 사상가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게 정의되는 개념이다. 주권의 소재가 국민에게 있다는 것 외에는 민주주의와 비(非)민주주의를 가르는 잣대가 없다. 주권의 행사 방법, 권력을 부여하고 제한하는 방법, 개인의 기본권 보장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해 줄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란 단어다. 인민독재나 계급독재도 누군가의 눈에는 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에 익숙한 우리의 눈으로 볼 때 북한은 ‘민주주의’도, ‘인민’의 나라도, ‘공화국’도 아니지만 그 체제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 인민독재나 계급독재도 누군가의 눈에는 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에 익숙한 우리의 눈으로 볼 때 북한은 ‘민주주의’도, ‘인민’의 나라도, ‘공화국’도 아니지만 그 체제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사진은 올해 7월 27일 평양의 승전기념일 [노동신문]


그런 이유 때문에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헌법 조문에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 헌정의 기본원리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거짓말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을 비롯해 헌법재판소의 숱한 판례에는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의 기본이념이라고 명시돼 있다. 헌법이 담고 있는 권력 분립·견제와 균형·기본권 보장 등이 곧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행 헌법은 1987년 소위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로 탄생했고, 개정되어야 마땅한 많은 독소조항들을 품고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가 제헌 당시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이었다는 점은 어느 모로 보나 분명하다. 그것을 부인하게 된다면 현재 집권 세력이 자신들의 역사적 공적이라고 자부하는 ‘민주화’ 역시 그 의미가 불분명해진다. 유신 체제나 제5공화국도 문언 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에 체제를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그 체제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체제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실업률이 치솟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산업 생산과 설비 투자 등 주요 경제지표들은 악화일로인데다 ‘드루킹 댓글 조작’ 등 정권 차원의 스캔들이 터져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공고하다.


김정은이 불가역적으로 핵과 미사일을 폐기한다는 어떤 신호도 보여주지 않고 있는데,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의 ‘완전한 비핵화’란 말에 홀린 언론들은 이미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기라도 한 듯 정권 찬양에 분주하다. 한미연합훈련이 중단되고 전시작전권 전환에 주한민군 철수론까지 거론되고 있는데도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유란 공기와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서는 소중함을 알기 어렵다. 공기가 희소한 곳을 겪어본 뒤에야 숨 쉴 수 있는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 자유가 억압된 곳에 있어 봐야 자유의 가치를 깨닫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식의 경험이 없어도 공기가 있어야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받아들인다. 배웠기 때문이다. 반면 체제의 중요성, 자유의 가치에 대해서는 가르치는 사람도 없었고 굳이 배우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간 체제를 보수하겠다고 자임해 온 우익 세력이 책임을 방기하는 동안 좌익은 교육 현장에서, 학계에서, 시민사회에서, 언론계에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내적 논리를 확대 재생산해 왔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정의가 실패하고 불의가 득세한 역사’라는 그들의 역사관, ‘광장에 나선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외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그들의 민주주의관,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 때문에 자기 방어용으로 핵무기를 개발한 것’이라는 그들의 국제정치관이 사회 전반에 퍼져나갔다. 그 결과가 지금 우익이 마주한 현실이다. 결국 뿌리는 대로 거두기 마련이다.


다만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조종을 울리기는 아직 때가 이르다. 그럴 만큼 현 집권 세력이 현명하고 유능하지는 못하다. 전임 정권의 실책을 틈타 집권한 이 정권이 붕괴할 징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포장된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등은 이미 경제적 취약 계층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탈(脫)원전 정책은 전력난과 전기요금 인상으로, 문재인 케어는 의료수요 급증과 질적 저하로 귀결될 것이다. 예멘 난민 문제 역시 대중적 정서와 정권 핵심 세력인 좌익의 논리가 불일치하면서 이미 파열음이 일고 있다. 현 정부의 섣부른 대북 유화정책도 그 본질은 국민 기만에 불과했음이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정권 집권 기간 중 정권 교체의 기회는 빠르든 늦든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기회가 왔을 때 우익이 다시 정권을 가져와 체제 전복을 저지할 수 있을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우익이 현 정부의 실질적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아무리 민심이 이반해도 우익에 한 번 돌아섰던 민심이 다시 쏠리지는 않는다. 계파가 달라 소외된 비문(非文) 세력이나 중도를 표방한 또 다른 좌익 세력이 집권해 체제 전복이 가속화될 뿐이다.


현 정권이 실정을 거듭하는 동안 우익은 개인의 가치와 자유의 소중함을 양대 축으로 해, 합리적이고 유능한 정치 집단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처럼 어설픈 좌익 흉내를 내는 것은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하는 패착에 불과하다. 좌익의 가치가 근본적으로 옳다면 당연히 좌익 정당을 찍지, 누가 좌익을 흉내내는 구(舊) 적폐세력을 찍겠는가.


우익은 지난 70여 년간 경제 발전과 산업화를 이끌어왔다는 점을 그 동안 가장 큰 업적으로 스스로 내세웠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경제적 번영도 선진화도 아닌 체제 수호다. 그리고 흔들리는 체제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우익 스스로가 가치를 선명히 해 유능한 대안세력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가 보존되는 한 대한민국이란 ‘테세우스의 배’는 구성원이 모두 바뀌어도 여전히 대한민국이지만, 체제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바뀐다면 국민 모두 그대로여도 그 나라는 더 이상 대한민국이 아닐 것이다. [계속]

사회

국방/안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