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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국가정체성을 찾아서(3) 한국 보수주의와 이승만 [특별연재: 사미즈다트 코리아(4)] 2018-07-29
조평세 pyungse.cho@gmail.com


사실 애초부터 이러한 기독교 정신의 공감대와 바탕에서 자유민주공화국으로 건국된 미국과 달리, 대한민국은 이러한 보수주의의 가치관이 뿌리내릴 토양이나 기초가 전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에 보수주의는 원래 없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 미국의 타임지 1953년 3월 9일자 표지인물로 등장한 이승만 전 대통령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70년 전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고 국가를 수립할 당시 이승만 초대의장이 국가의 원형(prototype)으로 삼았던 국가체제 모델은 바로 그 보수주의 정신을 인류 역사상 최초로 국가정체성에 담아낸 미국이라는 것이다.


배제학당에서 시작된 이승만의 서구 기독교문명으로의 개화(開化)는 한성감옥에서 1904년에 쓴 '독립정신' 말미에 정확히 드러난다.


청년 이승만은 여기서 인간 개인의 “본래 자유”와 책임의식을 이야기하며 개개인이 인간 상위의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그의 행동양식을 통제할 양심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 본질, 즉 인간조건에 대한 보수주의적 태도를 확실히 한다.


인간의 한계와 인간 상위의 초월적 창조주를 인정하는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만 “두려운 마음으로 죄를 짓지 못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착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진리를 통찰한 것이다.


이승만의 이러한 보수주의적 세계관과 자유민주국가관은 1941년 미국에서 출판한 'Japan Inside Out' (일본 내막기)에서 또다시 드러난다.


미국에 대한 일본의 공격을 수개월 전 예언한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사실 이 책은 민주주의(democracy)와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의 대조를 최초로 정립한 문헌으로서의 기념비적 가치가 있다.


당시 “전체주의”라는 용어는 윈스턴 처칠의 연설과 조지오웰의 에세이에서만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이승만은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대립을 학술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조명한 E.H.카, 포퍼, 레이몽아롱, 한나아렌트 등보다 수년을 앞서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이승만은 개인의 천부인권적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사실과 전체주의는 이를 전면 부정하는 인간의 무신론적 교만임을 명확하게 정리한다.


이렇게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이 이해하고 구상한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은 분명 인민민주주의와 반대되는 보수주의적 기반의 자유민주공화국이었다.


결정적으로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첫 세션에서 그의 보수주의적 자유민주가치관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승만 초대국회의장은 제헌국회를 열며 이렇게 고백하였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198명의 국회의원 중 약 50명만 개신교인이었고, 나머지는 불교신도나 유교신도였으며 전체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1%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이 “어떤 종교나 사상과 관계없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개인의 천부인권이라는 자연법적 가치관이 사실상 창조주를 믿는 유대기독교 전통 밖에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승만이 '독립정신' 말미에 적었듯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그 창조주로부터 부여된 인간의 권리를 설명하고 그 자유를 이해할 수 없다.


이 불변하는 진리를 인정하는 것에서 대한민국 보수주의와 자유민주국가정체성의 회복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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